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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의 ‘예술가의 한끼’
압도적인 사나이가 있었다. 사천왕상처럼 머리통이 크고 선이 굵은 얼굴에 가슴은 두툼하다. 숱이 많은 머릿결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코트를 입으면 잘 어울리는 당당한 체형이다. 역도산을 배출한 한반도의 동북부 함경도 특산의 장대한 북방형 기골의 주인공은 권옥연(權玉淵·1923~2011)이다.

권옥연이 나타나면 인사동길이 꽉 채워진다. 덩치도 크지만 제스처는 더 크다. 인사동을 출입하는 웬만한 미술인들에게 다 아는 척을 한다. 여자를 만나면 무조건 와락 안으며 볼을 비비는 인사를 한다. 눈빛은 순진하고 큰 덩치에서 나오는 기운은 묘하게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권옥연은 함흥 출신이다. 호는 무의자(無衣子)다. 옷을 벗은 벌거숭이란 뜻이다. 위선의 옷을 벗고 살려고 했다. 그의 동작은 거침이 없었고 솔직했다. 슬프면 슬픈 표정, 기쁘면 기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기쁘면 아무 데서나 노래를 불렀다. 두툼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노래는 일급이었다. 가곡을 잘 불렀다.


간송의 문화재 사랑 권옥연에게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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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굵은 사나이 권옥연은 아웃사이더 박수근의 그림이 국전 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때마다 다시 심사를 받게 했다.

함흥의 권 진사댁이라 하면 그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추사 김정희가 함경도로 유배 갔을 때 권 진사댁에 며칠 신세를 질 정도로 부유한 살림이었다. 증조부, 조부, 부친 그리고 어린 권옥연까지 5대가 함께 살았다. 중국과 무역을 하여 재산을 모은 토호였다. 여섯 살 무렵 아버지를 잃었다. 5대 독자가 된 권옥연은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귀한 손자에게 먹인 건 호랑이 육포였다. 소고기 육포도 엄청 귀할 때였는데 어린 권옥연은 함경도의 태산준령을 뛰어다니던 호랑이의 육포를 먹고 자랐다. 그 덕분인지 권옥연은 평생 강건한 육체를 유지했다.

권옥연은 함흥에서 상경하여 경성제2고보(경복고)를 다녔다. 우리 미술계에는 경성제2고보 출신의 미술인들이 많다. 첫 번째 미술교사였던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1899~1991) 아래서 정현웅(1911~1976), 심형구(1908~1962)가 배출되었다. 이 학교의 두 번째 미술교사인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1897-1945)에게 유영국(1916~2002), 장욱진(1917~990), 임완규(1918~2003), 김창억(1920~1997), 이대원(1921~2005), 권옥연(1923~2011) 등이 지도를 받았다.

권옥연은 도쿄의 제국미술학교에 재학 중 방학을 맞아 서울에 왔다. 집안 어른의 소개로 종로4가에 있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집을 방문했다. 여름이었던가 보다. 모시적삼 차림의 간송은 다정한 눈빛으로 젊은 화학도에게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었다. 점심때가 되어 간송이 일행을 냉면집으로 안내했다. 셋이서 냉면을 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식당으로 달려와 간송을 찾았다. 간송이 눈여겨보았던 탑이 제물포항의 일본행 선박에 실리고 있다는 급보를 전했다. 간송은 냉면을 먹다 말고 셈을 치른 후 두 사람을 남겨 놓은 채 제물포로 달려갔다.

권옥연이 즐겨 먹던 우래옥 냉면.

권옥연은 냉면을 먹을 때마다 간송의 다급했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간송의 문화재 사랑은 권옥연에게로 이어졌다. 전쟁 중인 1951년 나중에 무대미술가로 큰 활약을 하게 되는 이병복(1927~2017)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57년 파리로 갔다. 슬라이드로 찍어간 추사 김정희의 글씨들을 환등기 불에 밝혀 보았다. 미술의 도시 파리에서 보는 추사의 글씨는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추사의 글씨는 추사가 살았던 시대의 가장 치열한 현대미술이었으리라. 간송과 추사는 그에게 큰 스승이 되어 주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권옥연은 파리도서관에서 갑골문을 보고 대작에 매달렸다. 상형문자, 토기, 민속품 등을 소재로 한 반추상작품을 그렸다. 1957년작의 ‘절규’는 이 시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문자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문자가 되는 추사의 경지가 현대미술의 조형감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는 곳마다 여주인은 다 애인이고 장모님

권옥연 부인 이병복. [중앙포토]

1960년에 귀국했다. 1962년 부부는 경기 남양주 금곡에 땅을 사서 박물관 부지를 마련하였다. 그 모태는 영조의 옹주와 부마가 살던 궁(宮)집이었다. 궁집에서 판소리 등 수많은 야외공연이 이루어졌다. 이후 전국의 여러 고택을 해체한 뒤 금곡으로 가져와선 재조립하여 복원하였다. 이 공간이 채워지면서 무의자박물관이 되었다.

권옥연·이병복 부부는 서로 친하지 아니한 듯 보이는 데도 함께한 공동작업이 많다. 이들 부부에 의해 1969년 명동에 소극장 까페 떼아트르가 들어섰다. 소극장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극장 안에는 권옥연을 대신하듯 30호쯤 되는 그의 소녀상 그림이 걸려 있었다. 들창코의 이국풍 소녀였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자 무대막은 권옥연의 몫이었다. 그의 십장생도가 무대막으로 제작되었다. 2000년에 화재로 일부 소실되면서 철거되었다.

권옥연에게는 스승이 많았다. 젊었을 때는 모딜리아니, 클레, 세잔느가 스승이었다. 고야나 렘브란트의 거대한 스케일은 미술인생의 목표였다. 나이가 들면서 평범하다고 여겼던 주변의 작가들이 스승이 되어 주었다.

해방되고 국전이 생기자 일본유학파가 미술계의 이너서클이 되어 심사를 주도하게 되었다.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던 박수근(1914~1965)의 그림은 아예 심사 대상 바깥으로 밀리곤 했다. 그럴 때면 권옥연이 그의 그림을 집어다 다시 심사를 받게 했다. 권옥연의 눈썰미와 공정함이 박수근을 살려내었다. 권옥연은 박수근을 존경했다. 젊을 때는 구식이라고 여겼던 도상봉(1902~1977)의 작품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고귀하게 다가왔다. 박수근도 도상봉도 꾸밈새가 없었다.

권옥연의 작품 ‘소녀’, 캔버스에 유채, 40.9x31.8cm. [뉴시스]

한 살 위의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그의 9촌 아저씨였다. 권옥연은 진규 아저씨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작품이 그리 좋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에 갔다. 전시장에서 권진규란 사람의 모습이 섬찟하게 솟아올랐다. 거기서 생명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도상봉, 박수근, 권진규 등이 그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권옥연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체취를 중요시했다. 체취를 다른 말로 포에지라고 했다. 노래라고도 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사람의 목청만이, 그 사람의 톤만이 낼 수 있는 표현이 제대로 된 그림이라고 했다. 권옥연의 목청을 그림 속의 빛깔로 나타낸다면 오래된 기왓장을 닮은 청회색이 될 것이다. 청회색이 주조를 이룬 반추상적인 화풍은 나중에 소녀 연작으로 이어졌다.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그림이었다. 대신 작가적인 긴장감은 떨어졌다. 그를 더 큰 작가로 성장하는 걸 멈추게 했다.

권옥연은 화려했다. 성정이 반듯했다. 프랑스 대사였던 로제 상바르 등 교유한 사람도 다양했다. 일본, 프랑스, 미국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의 다양한 맛을 두루 섭렵한 미식가였다. 삶이 너무 다양했기에 그를 특정할 만한 딱 하나의 집중된 이미지를 찾기가 힘들다. 척박함이 지배하던 국내 미술계에 평생을 유복과 윤택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화려한 존재가 예외적으로 한 사람쯤 허용된다면 그가 바로 권옥연일 것이다.

그의 장충동 작업실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이젤이 놓인 한 평 정도의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쓰레기 더미다. 굳이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쓰레기가 쌓여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사를 한다고 했다. 이사를 하면 자동적으로 청소가 되기 때문이었다. 태연한 성격이었다.

도쿄에 그의 자그마한 아파트가 있었다. 서울의 삶이 지루해지면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한국 화가들의 전시가 있으면 나타나서 일본음식을 안내했다. 도쿄의 스시, 서울의 냉면을 다 좋아했다. 우래옥의 불고기도 인사동의 부산식당 생태탕도 좋아했다.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광화문의 일식집, 인사동의 방석집과 찻집 초당, 청담동의 커피숍 고센 등을 자유자재로 다녔다. 가는 곳마다 여주인은 다 애인이고 장모님이었다. 권옥연이 농을 걸면 상대방은 즐겁게 받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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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한 끼는 술과 밥과 고기가 아니라 어쩌면 노래였다. 흥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목소리는 여성적이었다. 음역은 테너였다. 미술인들의 잔치에 그의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그가 떠났다. 그림은 남았지만 노래는 영영 사라졌다. 인사동이 허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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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문학·무용·음악 등 다른 장르의 문화인들과도 교유를 확장해 나갔다. 골목기행과 홍대 앞 게릴라 문화를 즐기며 가성비가 높은 중저가 음식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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